교육뉴스 조선 명문가의 독서 지도 - 자녀·손자 무릎에 앉혀 책 읽어주고, “독서하라”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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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수샘(서울대멘토) 댓글 2건 조회 349회 작성일 16-04-19 18:22본문
조선일보에 좋은 글이 있네요.
질문하며 적으며 독서하라. 독서 교육에 관심 있는 엄알비 맘들께서는 한번씩들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18/2016041800286.html
최근 이영애 주연 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 제작 소식과 함께 신사임당을 비롯한 조선 명문가의 교육법이 재조명되고 있다. 관리, 즉 사회 리더를 꾸준히 배출한 조선 명문가들에서는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교육의 원칙`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 교육`에서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만큼 본받을 점이 많다. 오늘날 부모가 눈여겨볼 만한 조선시대 명문가의 교육법을 들어봤다.
◇책 읽어준 할머니… "독서환경 만들어라"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는 뜻의 `문형(文衡)`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홍문관 대제학·예문관 대제학·성균관 대사성(혹은 지성균관사) 등 학문을 담당하는 3개의 최고 관직을 겸임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별칭이었다. 그래서 문형을 배출한 가문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꼽혔다. 그중에서도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는 아들(이민서)·손자(이관명)·증손자(이휘지)를 모두 문형으로 키워냈다. 그 비결은 자손이 어릴 때부터 공부의 틀을 잡아준 것이다. 역사 전문 작가인 이상주(`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저자)씨는 "이경여의 아내인 풍천 임씨는 자녀와 손자가 어릴 때부터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줬다"며 "아들·손자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도 옛 고사를 인용해 훈육했다"고 말했다. 이경여의 손자로 좌의정에 오른 이이명은 "무릎 위 사랑을 많이 받았다"며 할머니의 독서 교육으로 자신이 성장했음을 밝혔다.
`구운몽(九雲夢)`을 쓴 김만중도 어머니 해평 윤씨의 독서교육 아래 성장했다. 윤씨는 남편이 병자호란 때 세상을 떠나자, 두 아들을 직접 가르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가난해서 책을 살 수 없었던 윤씨는 이웃의 아전에게 부탁해 책을 빌린 뒤, 직접 필사해 아들에게 읽혔다"며 "무엇보다 두 아들이 어릴 때 밤마다 `구송(口誦·소리 내어 외우거나 읽음)`을 해줬는데, 오늘날의 `베드사이드 스토리(bedside story·베갯머리 독서)`를 실천한 셈"이라고 했다. 김만중은 훗날 대사헌·대제학을 역임했고, 그의 형 김만기는 병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최 소장은 "윤씨는 `삼국지` 등을 읽으며 `소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고 아들에게 소설을 쓸 것을 권하기도 했다"며 "김만중이 `구운몽`을 쓴 뒤 `어머니께 바친다`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몸소 책을 읽으며 자녀의 멘토가 되어준 것이다.
◇목표는 느슨하게… "5줄 읽을 수 있어도 3줄만 읽혀라"
조선 고종 때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상수는 아이들을 위한 독서교육법을 남겼다. 첫째는 "좋은 문장이 담긴 좋은 교재를 고르라"는 것이다. 둘째는 "조급하게 다그치지 말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쓰지 못하면 다시 쓰게 하고, 그래도 틀리면 바르게 고치게 하라고 했다. 이같이 세 번 거듭하며 점진적으로 공부하면 통하지 않는 아이가 없다고도 했다. 셋째는 "목표를 느슨하게 정하라"는 것이다. 다섯 줄을 볼 능력이 있으면 석 줄만 가르치라는 얘기다. 적은 양으로 시작하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하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노력하게 하라고 했다. 이 작가는 "이상수는 이렇게 지도하면 어리석은 아이라도 다 따라하게 된다고 했다"며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강조되는 독서논술교육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전했다.
◇3代에 걸친 유언… "책 읽는 아이가 끊이지 않게 하라"
조선의 명문가는 부침이 심했다. 거듭된 사화로 정승이 죽임을 당하고, 식솔은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가문도 그랬다. 김수항은 1689년 기사사화(己巳士禍) 때 사사(賜死·사약을 마시고 죽게 함)됐는데, 172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는 아들 김창집과 손자 김제겸, 증손자 김성행까지 죽임을 당한다. 김창집은 당시 영의정이었다. 그런데 김수항 3대(代)는 죽음을 앞두고, 똑같은 유언을 남겼다. 먼저 김수항은 진도에서 사약을 마시기 전 아들들에게 "집안에 독서하는 아이가 끊이지 않게 하라"고 했다. 김창집도 죽기 이틀 전 손자들에게 편지로 "이번 화(禍)를 만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더욱 학업에 힘써 우리 집안에 책 읽는 사람이 끊이지 않게 하라"고 일렀다. 김제겸 역시 귀양지에 찾아온 셋째 아들 김원행에게 "죽음을 앞두고 보니 어린 달행(김원행의 동생)의 공부가 끊길까 걱정된다. 장인을 스승 삼아 계속 글을 읽게 하라"고 당부했다. 이 작가는 "4대가 사화로 죽임을 당하면서도 `독서하라`는 유언을 잊지 않았다"며 "이것이 조선 말기까지 가문의 세력을 잇게 한 비결의 하나"라고 말했다.
◇독서 효과 높이려면… "질문하고 적어라"
`지봉유설(芝峯類說)`을 쓴 이수광은 `계획적 독서`를 강조했다. 매일 하루에 읽을 양을 정하고 실천하길 권했다. "글 읽기는 활쏘기와 이치가 같다. 활을 쏠 때 마음을 과녁에 집중하면, 비록 빗나간다 해도 화살이 과녁에서 그다지 멀리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독서는 과녁에 집중하듯이 먼저 뜻을 세우고, 지향하는 바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책을 읽으며 기록하는` 습관을 중시했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좋은 내용을 볼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지식으로 어찌 감히 책 쓰는 흉내를 내겠는가. 오로지 잊지 않기 위해 한두 가지씩 적었을 뿐이다. 옛 시문에 대해서는 간혹 내 좁은 소견을 적었으나, 내 의견이 꼭 옳다고도 하지 않았다"는 글에서 이수광의 독서관과 메모 습관 등을 엿볼 수 있다.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도 `적으며 읽기`를 강조했다. 이황은 후학들에게 `분석하며 읽기`를 당부했는데, 특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적고, 생각하라"고 권했다. 정약용은 `독서 3단계`를 말한 바 있다. `왜 그럴까 스스로 질문하라`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계속 책을 찾아 읽어라` `궁금증이 풀렸으면 그 내용을 기록하라`는 게 그것이다. 이 작가는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독서 후 질문사항을 적어 토론하자고 했을 정도"라며 "모호한 글이 나오면 그럴듯하게 추론하지 말고, 다른 책을 읽고 비교하며 뿌리를 캐라고 가르쳤다"고 전했다.
댓글목록
마카로니님의 댓글
마카로니 작성일질문하고 적으라는부분이 새롭네요~ 정보감사합니다^^
검은머리앤님의 댓글
검은머리앤 작성일
질문하고 적는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토론 수업이 좀 많아 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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