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읽다] 서카포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입학처장들의 교육철학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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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수샘(서울대멘토) 댓글 0건 조회 1,014회 작성일 15-10-06 01:46본문
안녕하세요, 입학처장이란 한 학교의 입시 요강을 최종 결정하고 이를 적용하는 최고 담당자를 의미합니다.
특히 Top 학교의 입학 처장의 의견일 수록 파급력이 큰데요,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 입시 오피니언 리더인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입학처장의 교육 철학을 한 곳에 모아놓고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엄알비 맘들, 이제 입시 트렌드를 미리 보고 앞서 나갈 수 있겠지요?
"입시의 변화는 본질로 다가가기 위한 운동이다"
"식민사회적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고부가 지식 인력을 창출하기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디테일이 강한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
1. 서울대 권오현 입학 처장
"사회가 선진화되고 교육이 진정한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걸림돌로 작용해 온 대입을 미래 한국에 맞게 최적화 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관리로서의 입시는 대처만으로 충분하지만 운동으로서의 입시는 여러 가지 요소들, 예를 들면, 교육의 본질, 인재상 설계, 미래 비전 등 제반 요소들에 대한 연구와 검토,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입은 다양한 기능이 이면에서 상호작용하는 대표적 ‘복잡계’입니다. 게다가 국민들의 개인적 입장과 심리까지 작용하면서 입시는 어려운 실타래를 적극적으로 풀어가기보다 적정 수준의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실 대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형 설계와 실행 단계의 공정한 관리입니다. 입시는 모든 당사자들의 이익이 상충되는 치열한 자리다툼의 무대입니다. 전형 설계 단계에서는 수험생을 선정하는 방식이 사회적 정당성을 지니도록 유념해야 합니다. 전국적 학업성취도에서 앞서거나, 주어진 환경에서 상대적 탁월성을 보이거나, 공부하려는 분야에 나름 준비를 잘한 학생을 뽑으면 일반적 선발 준거로서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습니다. 실행 단계에서는 부정 개입이나 사정원칙의 편의적인 적용을 차단해야 하며 선발준거에 맞는 평가과정을 운영하는 데 철저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전형이라 하더라도 관리 차원에서 허점이 노출하면 전부를 잃는다는 점에서, ‘100-1은 99가 아니라 0’이라는 왕중추 교수의 디테일 공식이 대학입시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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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서울대 입학본부장 |
기본적 매니지먼트도 벅찬데 언제부터인가 대입에는 무브먼트(운동)의 특성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관리 차원에 더해 육성 차원을 아우르는 관점은 물론 대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개선하려는 국가정책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정관제 도입이나 공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 등은 역대 정부들이 정책을 통한 개혁적 운동에 얼마나 많은 무게를 실어왔는지 말해줍니다. 사회가 선진화되고 교육이 진정한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걸림돌로 작용해 온 대입을 미래 한국에 맞게 최적화 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관리로서의 입시는 대처만으로 충분하지만 운동으로서의 입시는 여러 가지 요소들, 예를 들면, 교육의 본질, 인재상 설계, 미래 비전 등 제반 요소들에 대한 연구와 검토,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운동으로서의 대입은 무엇을 위한 무브먼트인지 그 방향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요구합니다. 필자는 대입이 운동의 성격을 받아들인다면 그 초점을 국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각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학교-대학-사회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연계성은 자연히 대입을 냉정한 칼자루를 휘두르는 선발 기능보다는 무언가 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해온 학생들에게 그 꿈을 계속 이어갈 기회를 제공하는 계발적 기능을 중심에 두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것만큼 운동으로서의 대입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까지 대입 제도에 대한 변화 모색은 대학, 학교, 학생과 같은 교육 주체들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교육내적 동인보다는 사회적 문제의 완화나 그 부작용에 응답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으로써 대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정책적 흐름에 매번 응답하느라 짙은 피로감에 쌓여 있고 한 때 자신감 있게 수용한 개혁들도 ‘복잡계’ 대입에 내재한 다양한 메커니즘에서 어느 듯 해답이 오답이 되어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이제는 사회 문제는 지역균형선발전형 확대, 정시 비중 조정 등 입시 자체의 기능으로 해결하고, 입시제도에 대한 설계 및 개혁에 대한 논의는 근본적으로 교육적 본질을 기반으로만 진행되게 하는 개혁 논거의 우선순위제 도입을 검토할 때입니다.
입시제도의 변화가 의지해야 할 학교교육의 본질은 다음 세 가지라 생각합니다. 첫째,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자기를 계발해 갈 기회를 두루 제공하며, 둘째,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성장과 발전이 일어나도록 적절한 자극을 가하고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며, 셋째 이러한 과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제도적 투명성과 한결성을 유지함으로써 국민들의 내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 – 이러한 교육적 본질에 기반을 두는 입시 제도가 정착되면 공교육정상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와 자질을 갖추어 온 학생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는 대입제도가 연착륙하도록 운동으로서의 대학입시가 그 역할을 잘 마무리하기를 기대합니다.
2. KAIST 이승섭 입학처장
"학교에서는 가급적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기보다,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는 방식을 통해 식민지 백성에 맞는 ‘낮은 단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육성하도록 한다."
간혹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 교육은 아직도 식민지 교육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암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만일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우리나라가 일본을 식민지로 점령한 후, 필자가 제국주의의 왜곡된 시각으로 일본의 근대 교육의 방향을 기획 했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1. 학교에서는 가급적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기보다,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는 방식을 통해 식민지 백성에 맞는 ‘낮은 단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육성하도록 한다. 점령국 국민은 미래를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혁신을 통해 사회를 도약시키는 임무를 맡고, 식민지 백성들은 많은 양의 업무를 성실하고 빠르게, 그리고 실수 없이 수행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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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섭 KAIST 입학처장 |
#2. 어른이 되어서도 지배하기 좋게 학생들을 촘촘한 규칙 속에서 엄하게 지도하도록 노력한다. 식민지 학생에게는 올바른 규칙에 대한 이해와 공감, 혹은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복종심만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과 존중함이 없는 엄정함만을 못 견뎌 방종으로 흐르게 하는 방법도 용인될 수 있다. 식민지 백성은 사회를 함께 책임지고 구성하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3. 개인만을 생각하는 똑똑한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선발을 통한 경쟁 교육 중심으로 ‘솎아내어 버리는 교육 시스템’을 확립한다. 식민지 교육은 위대한 지도자 혹은 훌륭한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고,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한 소수의 똑똑한 중간 관리자 양성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4. 책임감, 사명감, 협동심보다는 경쟁에서의 우월성, 성실함, 개인주의를 강조한다. 식민지 중간 관리자들은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통해 대학에서 선발하고, 대학을 단순 서열화시켜 선발된 학생들에게는 다른 식민 백성에 대한 우월의식을 심어주고, 탈락한 학생들에게는 패배감을 안겨주어, 식민지 엘리트를 이용한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한다. 황당한 상상의 날개를 더욱 펼치면서 좀더 구체적인 교과목 설계까지 생각해 본다.
▲국어; 교육의 핵심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근본이지만, 식민지 백성에게 창의적인 글쓰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타인과 토론하는 말하기와 듣기, 자신의 인격과 지식의 깊이를 더하는 다양하고 많은 양의 책 읽기는 중요하지 않다. 점령국 학생들은 창의적인 작가, 토론과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정치가, 깊은 철학적 소양을 가진 지성인, 올바른 인격의 시민으로의 육성을 목표로 하지만 식민지 학생들은 앞으로 명령문을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실행하는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춰, 짧은 지문에 대한 정확한 주제 파악과 이해력만을 학습시킨다.
▲체육;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만드는 체육 교육은 가급적 최소화한다. 다양한 운동 경기를 직접 경험하게하거나, 팀 경기를 통해 팀워크를 배우고, 스포츠맨십을 익히는 기회는 없앤다. 특히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는 청소년 시기의 체육활동은 더욱 줄여 어른이 되어서도 가급적 체육 활동에 대한 흥미를 잃도록 유도한다. 체육 경기에서는 상호 경쟁을 강조해, 학생들이 운동을 스스로 즐기기 보다는 이기는 데 집착하도록 이끈다. 일부 운동 신경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수로 육성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 학업의 기회를 최소화해, 어떤 경우라도 지식과 체육 교육을 골고루 잘 갖춘 학생들이 양성될 수 없도록 한다.
▲수학; 식민지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기 위해 수학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사회현상에 수학적 이론을 적용시키는 능력 혹은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능력보다는, 주어진 많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반복학습과 기계적 문제풀이식 교육, 나아가 암기식 수학 교육이 제시될 수 있고, 많은 양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수학 기능인 양성이 최고의 목적이 된다.
▲영어; 국어 교육과 마찬가지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가운데, 외국에서 전해지는 명령문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짧은 지문 혹은 어려운 지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를 위한 암기 교육에 중점을 둔다. 식민지 백성은 감히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자유로운 토론을 하도록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혹은 철학; 점령국 학생들에게는 참된 인성을 가진 올바른 시민 육성이 가장 중요한 교육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식민지 학생들에겐 반드시 그렇지 않는 게 사실이며, 혹 도덕 혹은 철학이 필요한 경우, 탁상공론 혹은 구름 잡는 이론 중심의 수업을 진행시키도록 한다. 청소년 시기에 가장 필요한 바른 인생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토론 혹은 논술식 교육은 가급적 지양하고, 암기식 교육과 사지선다형의 시험 방법을 도입한다.
황당한 상상이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앞이 아찔해진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이 상상 속 내용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매우 불편한 마음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대학교수,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과학영재들의 선발을 책임지고 있는 KAIST 입학처장으로 자괴감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한다.
3. 포스텍 조준호 입학학생처장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이공계의 인재들은,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을 사실인 것으로 그저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숨어있는 디테일이 있으며 그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입학학생처장이 된 덕분에 ‘우수 고교생 초청 이공계 대탐험’프로그램이나 ‘잠재력 개발과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 특강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이공계 인재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문제를 한 번씩 내어 보다가 어느새 제 특강은 몇 가지 문제들로 인재들을 괴롭히는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이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별 이상한 악취미이지요? 최근 가장 좋아하는 문제 두 개를 한 번 꺼내 볼까요. 과학고, 영재학교 학생 300명쯤 초청해 놓고 문제를 낸 적도 있었는데 두 문제 모두 정답을 말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문제의 정답을 맞힌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두 번째 문제를 푼 학생은 한 명도 없었지요. 한 번 도전해 보시겠어요?
문제 1.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곱과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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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텍 조준호 입학학생처장 |
여러분은 아마도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서는 작도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적어도 중학교 시절부터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3등분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것이 ‘주어진 임의의 원과 같은 면적을 갖는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가능하다는 것들을 증명하기는 너무 어려워 보이니 조금 간단히 접근해 보는게 좋을 것 같네요. 즉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래서 나온 문제가 이것입니다.
단순화 1-1.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합과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1-2. 주어진 임의의 길이를 갖는 두 선분이 있다. 이 때 이 두 선분의 길이의 차와 같은 길이를 갖는 선분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너무 쉽잖아요’라는 불평이 여기까지 들리네요. 단순화 1-1이 합, 단순화 1-2가 차를 물었으면, 그 다음은 당연히 ‘곱’이겠죠? 그래서 나온 것이 위의 문제 1입니다. 자, 이제 한 번 문제 1을 풀어 보세요.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인 ‘신호 및 시스템’을 가르치면서 이 문제를 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해법을 내밀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맞힌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 한 15분 생각해 보셨나요? 15분도 생각해 보지 않으셨으면 그냥 포기하지 마세요. 정답은, ‘작도할 수 없다’입니다. 너무 놀랍지 않나요? 이 단순한 문제에 답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선분의 길이가 다른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짧은 선분의 길이를 단위 길이로 놓으면 긴 선분이 바로 답이 되고, 긴 선분의 길이를 단위 길이로 놓으면 짧은 쪽이 바로 답이 되겠지요. 하지만, 단위 길이를 이와 또 다르게 놓으면 답은 또 달라지겠지요. 사실,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는 것은?’이라는 문제들에서 주어진 자는 눈금이 없는 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우리가 이들 문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눈금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학생이 거의 없더군요. 즉, 학생들 대부분이 그저 문제와 답을 암기하여 알고 있었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는 시도를 안 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가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 두 번째 문제를 볼까요?
문제 2.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3등분 하시오.
‘이 문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문제잖아요’라는 불평이 또 메아리 치네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단순화 2-1.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2등분 하시오.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2-2. 주어진 임의의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4등분, 16등분, 64등분 하시오.
역시 너무 쉬운가요? 그럼 다음 문제는 어떤가요?
단순화 2-3. 주어진 임의의 각의 크기의 5/16의 크기를 갖는 각을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하시오.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일 수 있겠지만 ‘5/16=1/4+1/16’이라는 생각만 해낼 수 있다면, 단순화 2-2의 결과를 써서 4등분 한 각과 16등분한 각을 각각 구하고, 이들 각을 사잇각으로 갖는 이등변 삼각형을 각각 구한 후 삼각형 하나를 이동하여 다른 삼각형에 붙이면 두 각의 합의 크기를 갖는 각을 구할 수가 있겠지요. 이제 그러면 다시 문제 2로 돌아가 볼까요? 이제는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 있겠어요? 역시 답은 ‘못한다’인가요? 그럼 한 번 더 힌트를 줘 볼게요.
단순화 2-4. 1/4+1/16+1/64+…인 무한등비급수의 합은 무엇일까요?
등비급수의 합의 공식을 아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1/4)/(1-1/4)=1/3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답은 1/3입니다. 그럼 이제는 문제 2에 답할 수 있나요?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할 수 있다’입니다. 임의의 각에 대해 1/4^n, n=1,2,3,…, 의 크기를 갖는 각을 작도하고 이들을 계속 더하면 되지요. 하지만, 문제 2는 작도가 불가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문제잖아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사실,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작도할 수 없는 것은?’이라는 문제들의 답은, 주어진 자와 컴퍼스를 ‘유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나온 답입니다. 무한번 사용할 수 있다면 임의의 각의 3등분처럼 답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역시 안타깝게도 제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우리가 이들 문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와 컴퍼스는 유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학생이 전혀 없더군요. 즉, 모두가 그저 문제와 답을 암기하여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는 시도를 안 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또 다른 가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두 문제로 많은 이공계 인재들을 ‘성공적으로’ 괴롭혀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글을 읽지 않은 많은 학생들은 제 질문에 당황하겠지요. 사실 이건 교수의 악취미는 아닙니다. 문제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이공계의 인재들은,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을 사실인 것으로 그저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숨어있는 디테일이 있으며 그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오늘 무엇인가 한 가지는 배우셨나요? 그렇다면 적어도 내일부터는 이렇게 말해 주세요.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를 유한번 사용하여 임의의 각을 3등분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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