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수동성: 학원이 망쳐놓은 아이들 - 능동적 프로세스의 필요성
1. 예전 “학력고사”를 그리워하는 이유
학력고사 세대의 많은 분들은 지금 수시 위주의 시험보다 학력고사가 더 공평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학력고사 시대에 내신이 아예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한 등급간 2점 정도 점수차가 났었습니다) 충분히 학력고사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결국에는 고3까지 계속 실력을 끌어올려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철이 늦게 드는데, 고2나 고3이 되어서야 철이 드는 아이들도 충분히 기회가 있었고, 재수를 해도 시험 제도 자체가 불합리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능 세대로 넘어오면서 프로그램 자체가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고, 개인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공교육의 근본적 문제점 때문에 수능식의 시험에 학교 교육만으로 대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부족한 학습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고, 온라인 학습이 경쟁적으로 본격화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더 심화되었습니다. 그때는 신문마다 “공교육이 무너진다”가 이슈였습니다. 이런 무너지는 공교육을 구하려고 나온 것이 사실 “내신 위주의 입시제도”입니다. 아이들을 학교로 다시 끌어들이는 것에는 성공하고, 덕분에 선생님들의 권위는 올라갔지만 그 댓가로 내준 것은 학교가 철저한 평가 기관으로 전락하고, 아이들은 “수행평가-중간고사-수행평가-기말고사-수행평가-중간고사-수행평가-기말고사”라는 전과목 시험 사이클과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2중 부담까지 껴안으면서 선행 없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심각한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고, 더하여 수시 위주의 입시가 목동처럼 공부를 잘 하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불합리하고 불리하게 작용하기에 정시를 없앨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학생들의 부담은 그 어떤 때보다 가중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기에 아이들의 부담은 정말 무겁고, 무엇보다 문제는 벌써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에 철이 들어서 선행을 제대로 마쳐야 이 게임에 들어갈 수 있는 현실입니다!
2. 학원은 “암기 공화국”, 아이들은 “극단적 수동성”
학력고사나 수능문제들은 꽤 오랜 시간 준비되고 검토되는 국가가 검증하는 객관성이 최대로 보증되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신 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부모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조잡한 문제들이 넘치고, 심지어 현직에 있는 교사들도 대부분 아이들이 절대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수준에 맞지 않는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습니다. 언어 추론 훈련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중3에서 고1이 된 아이들에게 고3 수능 시험 문제가 외부 지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출제되고, 영작 수업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아이들이 주관식으로 출제된 까다로운 영작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대부분 학원의 목표는 이제 수능 시험이 아니기에 큰 관점, 장기적인 계획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그 학교 시험 경향에 맞추어서 성적을 내는 전략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나 프린트를 단기간에 일방적으로 외우게 하는 공부, 대학생 알바생을 붙이고, 교과서를 이미 외우지 않으면 문제풀이 수업에 아예 넣지 않고, 심지어 하얀 종이를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써야 집에 보내 주는 식의 공부가 횡횡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 문법 키워드는 1과 당 고작 2개 정도이고, 중간고사에는 4개나 6개 정도의 문법 키워드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이 제한된 범위의 문법 문제로 구성된 내신 문제집 몇 권과 기출 문제들을 맥락도 없이 달달 외우게 됩니다. 중학교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런 식의 암기 위주의 공부가 주가 되면서 대부분 아이들은 극단적인 수동성에 빠지게 됩니다. “왜 그러한가? 이것은 전체 맥락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부분인가? 이 개념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공부라는 조직적 게임의 기본이 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제한된 시간 안에 어마 어마한 학교 시험을 다 커버해야 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물음을 던질 여유가 없고, 학원에서도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이 없습니다. 결국은 단기적인 암기를 누가 더 효율적으로 시켜줄 것인가가 관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중등부에서 잘 했던 아이들이 맥없이 고등부에서 무너지는 이유
제한된 범위와 맥락 없는 공부, 그리고 암기식의 수동적 학습 방법에 익숙한 아이들은 고등부에 올라가면 대부분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이유는 도무지 암기로는 대비가 안 되는 많은 시험 분량과 문법에 대한 조직적 사고와 응용능력, 그리고 언어적 추론을 테스트하는 것이 주가 되는, 중등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험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수동성에 빠져 있던 아이들은 능동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고등부 시험에 대부분 적응을 잘 못하는데, 특히 중등부에서는 성적을 냈던 아이들의 좌절감이 더 큽니다. 편협하고 지엽적인 공부, 그리고 극단적 수동성에 길든 공부가 결국은 어떤 성과도 가져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왜 많은 학력고사 세대의 부모들이 차라리 학력고사가 더 공평한 시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더 기회를 많이 주고, 공부법 자체를 훼손하지는 않은 시험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4. 선행이 키워드지만, 아이를 수동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동적 프로세스가 프로그램의 핵이 되어야 한다!
지금 중등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3가지 중 첫 번째는 (1)커리큘럼의 연계성입니다. 반드시 지금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고등부와 이어질 수 있는 연계형 커리큘럼이어야 합니다. 중등부 과정에만 머무는 지엽적인 커리큘럼, 영어 전체에 대한 조직적인 프레임과 기반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공부는 사실 뒤에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2)수동성을 깰 수 있는 능동적 프로그램이 꼭 필요합니다. “왜 그러한가? 이것은 전체 맥락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부분인가? 이 개념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공부라는 조직적 게임의 기본이 되는 질문이 들어가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전체 얼개 속에서 체계를 갖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공부가 쌓이지 않습니다. 또한 학습 프로세스가 수동성에서 벗어나 능동성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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