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철학] 주는 자와 받는 자(버블껌 사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16-04-30 17:21본문
철학수업은 아이들 차지이며 아이들 세상입니다.
아이들이 말하고 싶은 것, 행동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는 물론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얘기
들을 종종 털어놓습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고, 내 얘기에 때론 흥분하며 때론 슬퍼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떤 얘기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해주는 철학 샘이 있습니다.
철학수업에서는 준비된 수업내용 이외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애초에 교재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을 토대로 풀어가는 수업이기에 어느 방향으로 수업이 전개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이들도 샘도 오늘은 어떤 얘기꽃을 피울지 기대를 품고 철학수업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다툼도 빈번하게 일어나지요.
철학수업을 시작한 지 4주째를 맞이한 5학년 반에서도 갑작스레 다툼이 생겼습니다.
A군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여러 색깔의 작은 버블껌 몇 개를 꺼내더니, “껌이네”하며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해요. 색깔은 맛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남자 2명, 여자 2명인 반이라 책상 앞쪽으로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고, 여자들끼리 남자들끼리 자연스레 짝꿍이 되었습니다.
A군 옆에 앉은 B군이 버블껌 하나를 낚아채며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네”
그러자 A군은 “내놔! 내가 먹을 거야.”
마침 그 맛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B군도 질세라, “내가 먹을 거야.”라고 말하며 내놓지 않습니다.
A군은 B군의 태도가 못마땅합니다.
“내가 가져왔으니까 내가 주인이야. 내 맘대로 나눠줄거야.”
실상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B군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B군은 침착하게 “그럼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고 제안합니다.
A군은 기가 막히죠. “뭔 소리야. 내꺼잖아.”
결국 A군은 B군의 손에서 자신의 두 손으로 버블껌을 빼앗아갑니다.
B군은 빼앗기지 않으려 했지만 왼팔에 기브스를 한 탓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버블껌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철학샘과 여자아이들은 두 남자아이의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냉랭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태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아이들끼리 잘 해결하기를 바랐지만... 이제 철학샘이 나설 차례네요.
철학샘은 남자아이들에게 잘잘못을 따져주어야 할까요?
“A야. 뭘 가지고 온 거니?”
뾰로퉁해진 A군이 대답합니다. “껌이요.”
“왜 가지고 왔어?” “나눠주려고 했는데, B가 자기 맘대로 가져갔어요.”
그랬더니, B군이 끼어들어서 말합니다.
“A는 이기적인 녀석이에요.”
A군도 질세라 응대를 합니다.
“왜 네 맘대로 해. 너가 이기적이야.”
철학샘이 칠판에 글자를 적습니다.
‘주는 자’ ‘받는 자’
“A는 주는 자이고, B는 받는 자이다. 맞지?”
A군은 B군을 힐끗 보고는 말합니다.
“안 줄 거예요.”
B군도 말하지요.
“줘도 안 받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주는 자가 주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지. 또 받는 자가 받지 않으면 그 역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야.”
아이들이 뭔 소린가 하며 철학샘을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B군은 눈에 물기가 살짝 보입니다.
“이것은 A와 B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는 자는 어떻게 해야 줄 수 있고, 받는 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철학샘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두 남자아이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합니다.
“A는 지금처럼 하면 네가 주고 싶은 것을 줄 수 있니? 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주면 받는 사람은 고맙게 받을까? B는 지금처럼 하면 네게 받고 싶은 것을 받을 수 있니?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니?
이기적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 진짜 이기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해야 이기적인 것이지. 지금처럼 하면 아무도 이익을 얻을 수 없지 않니? 주는 사람은 주어야 하고, 받는 사람은 받아야 한다. 그 목적을 이룰 때 이기적인 것이지.”
이때 잠자코 있던 C양이 끼어들어 말합니다.
“선생님, 저도 A가 지난번에 준 껌이 별로였는데 그냥 받아서, 지금 또 받은 거예요.”
철학샘이 말을 이어갑니다.
“주는 자가 안 주겠다고? 왜 포기를 하지? 철학시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어. 하지만 철학시간에는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야 되지 않니? 나에게 좋은 방법이 정말 좋은 방법일까? 주는 자는 받는 자가 기쁘게 받을 수 있어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겠지. 받는 자는 주는 자가 기쁘게 줄 수 있도록 해야 자신에게 좋은 것이겠지.”
A군과 B군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이 벌어지면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일을 해결하려면 나에게 좋은 방법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도 상대가 기쁜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철학하는 아이들의 태도인 것입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탐구공동체로서의 철학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상황을 통해서 하나씩 익혀가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엄알비 학원회원의 경우
엄알비 고객센터에 '직접연락'을 주셔야 가입이 승인됩니다.
가입이 승인된 학원 회원에 한하여 활동이 가능하오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절차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엄알비 대표번호 : 070-4131-9566, 엄알비 대표 이메일 : rew1210@gmail.com